강연을 지켜보던 기자는 문득 오래된 ‘유물’처럼 여겼던 한 단어를 떠올렸다. 산업보국(産業報國). 먹고살기 힘든 시절 허허벌판에 공장을 세우고, 수출로 달러를 벌어들여 한국 경제를 떠받쳤던 기업인들을 관통한 정신이다. 한 시대가 지났지만 기업인들은 여전히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들을 둘러싼 기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점도 그대로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경기 침체 등 숱한 난제에 파묻혀 있다.
은행에 대출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하는 것도 사실상 가격 통제와 다를 바 없다. 은행들이 고금리 시대에 과도한 이익을 내는 건 불편한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나오는 시장금리를 여론의 잣대에 견줄 일은 아닌 듯싶다. 나중에 대출이 부실화하면 자산 건전성 악화를 이유로 은행들만 ‘조리돌림’ 당할 게 뻔하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들고나온 납품단가 연동제(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의무 반영)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을 외면한 발상이다. 되레 물가 불안만 부채질할 공산이 크다.
정치권과 정부의 시장 개입은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다. 이러다 슈퍼마켓 진열대에 놓인 식료품과 동네 중국집 짜장면값까지 통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지경이다.
당시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인플레이션은 가격 통제로 막을 수 없다”고 비판한 대로였다.
한국에도 ‘최신 사례’가 차고 넘친다. 전기료 인상 억제 정책으로 인해 한국전력은 올해 1분기에만 7조8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정부 규제로 14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탓에 주요 사립대학들은 적자에 허덕이며 부실해지고 있다. 전·월세 임대료를 통제한 임대차 3법은 거래 절벽과 전셋값 폭등만 불러왔다. 작년 시행된 법정 최고금리 인하(연 24%→20%) 정책은 취약계층을 고금리 사채 시장으로 내몰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시장에 개입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겠다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좋은 의도를 가졌더라도 그렇다. ‘보이는 손’의 힘이 세질수록 ‘국가대표’들의 발목만 붙잡을 뿐이다. 시장은 뒤틀리게 된다. 이제라도 뭔가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관련뉴스